유난스럽게 따스했던 보스톤의 겨울, 그 겨울 방학 동안 누나 집으로 날아갔다.
조카가 한국에서 방학 동안 누나 집으로 놀러와서 조카랑도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일 주일간 여행을 다녀온 뒤 누나 집에서 뒹굴 뒹굴하다가 다시 샌디 에이고를 길을 나섰다.

사막도 지나고 바위 산의 정상에 이르자 긴장감도 풀리고 슬슬 말문도 트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할까? 한국에서 온 조카는 그나마 어린 시절 청송에거 많은 시절을 보냈었다.
그렇기에 고향집에서 사는 동안 같이 보냈던 시간이 많았다.

내가 고등 학생이 되어 포항에서 학교를 보내며 조금씩 조카를 보기 힘들었다.
대학생이 되며 조카를 볼 시간은 기껏해야 1년에 한 두번. 내가 미국으로 오던 해 막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조카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처음으로 한국에 나갔을 때 조카는 벌써 사춘기 중학생이 되었다.

지나온 시간의 거리 만큼이었을까. 5년 만에 처음 만난 조카는 그 무엇이 어색한지 나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3년 뒤, 최근 몇 년 한국에 자주 나가면서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쓰잘데기 없는 노력이 컸다. 말도 안되는 농담이며 심심풀이 연예정보 이야기나 하면서...

나의 체면이 좀 구겨지긴 했지만 말이다.
무언가 좀더 새로운 것도 보여주고 그 동안 만들어진 이미지도 개선시켜 보고 싶었다.
운전 중에 지나가는 말이 떠 올랐다. 그리고 조카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구나 처음 운전을 배우고 시작하면 보여지는 것은 오직 자기 앞에 주어진 하나의 길이다.
내가 지금 가는 길, 지금 내게 주어진 그 공간과 시간만 의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서툴기에 옆 차를 보거나 뒷 차를 주시하거나 다른 차선을 흘겨보는 것 마저도 힘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기 저기를 주시하면서 잘 한다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맞는 말 같았다. 내가 달리는 길 뿐 아니라 옆 길의 다른 차의 움직임도 주시하면서
적절한 상황 판단을 하고 어쩌면 다가올 위험한 순간도 대비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마치 자동차를 이끌고 길 위를 달리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하나의 길 위에 서서 달리기 시작하지만
인생의 매 순간에서 받아들이는 경험에 따라 그 길이 조금씩 달라져 보이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인생의 어떤 한 순간에서 대로에 들어서기도 한다.
대학이라는 길에 들어서보니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넓은 세계, 다른 경험을 하다보니
내가 가고 있는 길 뿐이 아니라, 옆에 길도 보이더니 그 길에 선 사람들도 보였다.

운전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력이 솜씨 좋게 발전하듯이 인생도 역시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그 순간에서 마주친 경험이 쌓일 수록, 한 단계 높은 세계로 들어가며 다른 길도 보여진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조카도 달려가는 인생 길에서 좀더 많은 길이 보여질 것이라 말해 주었다.

운전에 더 능숙한 사람처럼 인생의 선배인 아버지나 어머니는 정방향의 길 뿐만이 아니라
반대편의 길도 보일 것이고 그 길에서 자신을 향해 오는 것들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길을 달려가며 다른 길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충분히 많이 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혼자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정말 인생이란 길을 달려가는 것 같았다.
때로는 고단히 오르막길을 한 없이 오르기도 하고 요령이 생겨 때론 지름길로 나아가기도 하고,
수 많은 다른 인생들 속에서 북적거리고 부대끼기도 하고 혼자서 한 동안 달려 가기도 하고,

덜커덕거리며 요란한 인생길을 살기도 하고, 주욱 늘어진 평탄한 길을 마음껏 달리기도 하고,
때론 사고가 나서 잠시 쉬어가기도 남들보다 뒤쳐져 가기도 말이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길을 달려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달려갈지.  인생의 길에서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2012/03/23 09:40 2012/03/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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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2/04/27 02:00  address  modify  write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Gerontology 2012/04/30 11:54  address  midify

      지금 옆에 타고 있는 것 아니야? 지금 같이 타고 가는 중 이잖아
      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