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라는 시간 속에 숨어있는 추억들이 많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옛 박스에서 추억 사진을 꺼내는 것 아니다.
그저 내 가슴 속, 마음 속에 간직한 것들을 남기고 싶다.

그것들이 너무 많아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서 조금씩 시간이 나는 대로.
남기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가져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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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Adult School 또는 Free School이라 한다.
영어 공부를 많이 했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도 많이 사귄 곳이다.
공짜이기에 의구심이 가지만 한번 수업을 들어보면 돈 내고 학원 다녔다는 것이 화가 나고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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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한국인에게는 많은 인기가 없다. 돈을 줘야 제대로 배운다고 생각한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여기서 내 삶의 길을 바꾸기 시작했다. 리고 길 건너 City College. 모교다.
여기서 보낸 2년 6개월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다.

영어 연수가 아닌 대학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라기야 한국 고등학교에서 다 배운 내용이다.
단지 영어를 못해서 무시 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수업 시간에 말 못해서 무시 당하고 잘 못 알아 들어서 실수도 많이 했다.

내가 당당해지는 날은 시험 점수 받는 날이다. 100점을 받고 A를 받고 내 이름이 불려진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수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고 처음으로 정규 미국 학교도 다닌 곳이다.
그리고 평생을 할 친구도 있고 언제나 도움을 주시는 교수님도 계신다.

오랫만에 걷기로 했다. 옛 기억을 되 살리며 걷는 것도 재미 있을거라 생각했다.
차를 세우고 12가와 B street 위에 섰다.
수업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일터로 향하며 3년을 꼬박 걸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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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른 길보다는 언제나 이 길을 택했다. 꿈을 키우기 위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유치한 생각도 했다. 높은 건물의 사무실로 정장을 입고 향하던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곧 그렇게 할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웃으며 다시 걸어 보았다.

너무 오랫만인지 신호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에 맞게 신호가 바뀌는 것이 재밌는 길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신호 앞에서 한 박자 쉬면 어느새 불은 녹색으로 바뀐다.
예전에는 잘도 했는데 맞추기가 힘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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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자가 아니라 두 박자를 쉬어 5가에 도달했다.
5가에 있는 연인들 (내가 붙인이름). 서로 딴 곳을 쳐다 보는 듯한 이 두 사람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어느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로 앉아 있다.

난 여기서 두 박자도 쉬고 세 박자도 쉬어 본다. 누군가가 감상하라고 만들고 세워 놓은 것인데
그냥 지나쳐 버리면 그들에 대한 예의를 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다섯 박자를 쉬고 사진도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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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은 빠르다. 나는 어느새 다른 길에 들어섰다.
NBC 방송국 앞 버스 정류장 일이 끝나고 9시가 넘고 10시가 넘어도 자정이 되어도 집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사람들이 무섭지 않냐 하지만 무서운 적 한번도 없다. 항상 버스 타던 곳이다.

매일 같이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서로가 안다.
가벼운 눈인사는 오고 간다.
열심히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 사람들이다.

시내의 명물 Horton Plaza가 있다. 관광 명소이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2001년 한국 행을 결심하고 비행기 타기 일 주일전에 여기에 있는 프렛즐 가게에서 일을 했다. 운명이다.
여기서 나는 일을 구하지 못했다면 나는 인생의 다른 길로 가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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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쇼핑몰은 요상한 구조다. 층은 같지만 높이가 서로 달라 처음 온 사람들은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는 아는게 없다.
그는 설계한 건축물에 항상 포인트를 둔다고 한다.

이 몰에 남긴 둔 포인트는 비쭉 나온 삼각형이라고 한다. 배의 앞 모습으로 형상화 했다.
내가 일하던 옆 가게 아이스 크림 가게에서 일하던 동갑내기 에딘이다.
아직도 나를 기억했다. 예전에 내 발음 고쳐 주던 놈이다.

장난도 치고 아이스 크림도 얻어 먹었다. 주인이 알았으면 이 녀석 벌써 해고다.
5년이 지난 지금 자기는 아직도 그대로 같은 가게에 있고 한 학교를 마치고 보스톤으로 박사 간다는
나를 부러워 걱정해주는 착한 놈이다. 많이 추우니까 몸 조심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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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전에 한번 더 들리라고 한다. 뜻 보니까 매니저가 된 것 같은데.
맛있는 아이스 크림이나 얻어 먹어야겠다. 이제 매니저 이니까 더 많이 주겠지
이 가게와의 인연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크림은 Ben & Jerry가 되었다.

마지막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Sea Port Village에 도착했다. 수없이 많이 갔던 것이다.
수업 마치고 시간이 남아 바람 세려 가고 친구들이랑 놀려도 갔다.
우울할때 마땅히 갈곳 없을 때 차 없이도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잔디에 누워 하늘도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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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마음에 두었던 소원 트롤리 사진을 찍었다. 샌디 에이고 명물 중 하나 빨간색 트롤리이다.
생각보다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아무래도 한번더 가야 할 것 같다.
이거 찍는 다고 30분 서 있었는데.

다음에 하얏트 호텔 40층 로비에서 찍어야 겠다. 전에 한번 우연히 보았는데 멋있어 보였다.
길을 돌아섰다. 처음 시작 한 곳으로 가야 한다. 어느 길로 갈까.
번화한 gas lamp를 지나쳐 갈까. 재미없는 broad way를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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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오랫만에 친구라도 볼 수 있는 c street 를 따라 갈까.
그래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슈퍼에서 일 할때 누구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돈 한 푼 없는 거지에서 펜트 하우스에 사는 부자까지 뉴스에 나오는 메인 아나운서 그리고 보도 기자들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 마약을 거래하는 딜러들. 어떻게라도 담배하나 맥주 한 캔 사 볼려는 10대들.
좋아 하지 않았다.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말도 붙이지 않았다.
사람 정이라는게 어디 그렇냐. 보고 또 보면 정이 든다. 어느 새 난 그들과 친구 처럼 되었다.

그들은 거지가 되고 싶어서 거지가 된 것이 아니었다. 이해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가져다 온 가장 혹독한 선물인 가난의 굴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사람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없을 수만 없다. 2년을 일 했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시내에서 어딜 가던지 어느 구석에서 친구를 만났고 겁없이 다가 설 수있었다.
악수 하고 포옹하고 인사 했다. 한번은 이런적도 있었다. 도서관 앞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일을 그만둔지 2년이 지나고 스테파니 (흑인 40대 아줌마, 갱처럼 치장함, 단골)를 보았다.

너무 반가워서 저 멀리서 스테파니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길 한 가운데서 포옹하니까
주변 사람들 다 쳐다 보았다.
동양인 어린 친구가 40대 흑인 아줌마 안고 기뻐라 날 뛰는게 이상했는가 보다.

혹시나 이런 만남을 하면 길을 따라 걸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떠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온 것일까.
2007/04/16 16:48 2007/04/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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