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찾아왔다. 서른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생일을 가까이서 보면서도 아직 나에게는
먼 훗날의 일 같았다. 아직 한참이나 더 가야 할 먼 여정,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서른의 문턱에
가까이 섰다.

오랫만에 서른 맞이를 했다.
안 좋은 습관일까 나는 2개의 다른 생일을 챙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음력 생일.
미국에 오면서 생긴 양력 생일.

대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5월 윤달이 끼었던 올해는 며칠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바나나 음료가 아닌 밥을 해서 미역국 아침 상을 차렸다.
한국에서 멋진 친구가 미역국을 선물로 보내주었기에 한결 수월 했다.

밥을 하고 국을 만들고 반찬을 꺼냈다.
생일상이지만 평소 먹는 반찬에 치즈 계란 말이를 하나만 더 올렸다.
오래전 만들었던 전구지 김치, 얼마전에 만든 막김치, 밥 상의 단골 메뉴, 계란 장조림, 멸치 새우 뽁음, 어묵 뽁음.

그리고 좀 특별한 반찬, 동그랑 땡
다 내가 손수 만든 것으로 차리고 나니 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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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들기전에 한국에 전화를 했다.
주무시다가 일어나신 아버지가 통화를 들으셨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냥 인사말에 웃으며 내 생일인지는 아느냐고 물었다. "응 생일이 내일 아침 아이가."

"아이다 오늘 아침이잖아" "글나 난 인제 모르겠다. 밥은"
짐작이 간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그리고 한 참뒤 다시 잠잠해진 목소리로 " 묵었나"
"응 지금 먹고 있다."

더 이상 통화를 하시지 못하신다. 우리 엄마 연세에 7남내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생일 그렇게 많이
기억하실려면 얼마나 힘이 드실텐데 하루 정도 차이는 대단하시다.

10월21일 하루를 남겨 두었다.
학교를 갔다. 평소와는 달리 Abigail 이 자꾸 나를 피하며 먼가를 자꾸 부탁한다. 그리고 수업 시간이 되었다.
먼저 가서 문을 조금 열어 달라고 한다.

그 정도 쯤이야 하고 가서 문을 열었다.
교수님이 오시고 뒤따라 아비게일이 직접 만든 컵 케잌을 들고 나타났다.
"Jay, Happy Birthday!!!!You are a real adult now.  30 years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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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두고 깜짝 파티라 하는 것일까. 교수님도 좋아 하신다.
어느새 준비 해두었던 Lauren 이 카드를 꺼낸다. 생일 축하 인사로 빼꼭히 적힌 카드를 자꾸 얼굴이 붉어진다.
피곤한 탓으로 힘이 쭈욱 빠져 있었는데 이제 힘이 솟아 오른다.

Abigail 이랑 Lauren 은 같이 학교를 다니며 내 생일 알고 싶어했었다.
나는 계속 모른다고 했다고 올초에 서른이 된다고 하니 언제 되냐고 하도 묻길래 10월의 어느날이라 했다.
그러니 당장에 적더니 꼭 파티를 해 준다고 했다. 미국에서 서른번째 생일은 정말 어른이 되는 순간

중요하고 큰 생일이라 했다.
그리고 9월 어느날 나의 생일이 들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되어온 것들이
미리 터졌다.

나도 모르게 서른이 다가오면 정말 조금씩 서글퍼졌다.
20대를 돌아보며 아쉬운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났다. 무엇인가 계속 아쉬웠다.
하지 못해 지나가버린 것에 아쉬워하기 보다 생각을 바꾸어 나의 20대를 한 것들만 생각해보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것들을 했었다. 어느 책처럼 다한 것은 아니지만,

꿈, 나도 꿈이 있었다. 철없던 시절에는 그렇게 미국에 살고 싶었고 하버드를 가고 싶었다.
나는 나의 20전부를 미국에서 보냈고 앞으로 좀더 지내야 한다. 하버드, 비록 다니지는 않지만
몇번 가 보았고 언제든지 갈 수 거리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꿈을 꾸고 키워가고 있다.

열정, 20대를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들 친구들을 보면 나의 20대를 건조하게 바라본적이 있다.
유학생이라는 틀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지내었다. 미치도록 공부도 해 보았다.
지겹도록 도서관에도 살아 보았다. 땀으로 범벅이 되며 아르바이트 힘든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었다.

가족, 운이 좋은 것일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가족들이 잘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들,
형수님들, 누님들, 조카들, 그리고 알프래도 매형, 그의 가족들.
더 늦기전에 언제 한번 다 같이 모이고 싶다.

사람, 나의 20대에는 사람복으로 넘쳐났다. 언제고 내가 힘들 때면 항상 나를 지켜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좋게 헤어지기고 나쁘게 헤어지기도 하고 마지못해 헤어지기도 했다. 연락하는 사람도 있고
연락하기 싫은 사람도 있고 연락 할 수도 없는 사람도 있다.

우정, 나에게는 친구라는 우정보다 인간과 인간으로 다가가는 우정을 나눈 사람이 있었다.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기 힘이든다. 냥 빈칸으로 남겨 언제든지 채우고 싶다.

여행, 가까이에서 멀리까지 많은 여행을 했었다. 미국이라는 곳에 한정이 되어 있지만 집 근처의 공원으로
향하던 산책 여행에서 부터 미국 대륙을 가르던 횡단기. 언제나 나는 여행에 목말라 있다.

사랑,

공부, 정말 나의 20대는 지겹도록 공부로 가득차있다. 언제나 외롭고 힘든 싸움이지만 10년이 지나 가도록
꿋꿋이 하고 있다. 20대에 박사를 받고 싶었지만,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다.

취미, 테니스도 많이 쳤고 좋아하는 사진도 많이 찍어 보았다. 이 둘다 끝까지 가져가고픈 좋은 취미,
맥주 모으기 아직 진행되고 있다. 다만 약간 주춤 거릴 뿐 곧 100가지 맥주를 채울 것 같다.

일기, 매번 일기는 쓰지 못하지만, 블로그를 통해서 꾸준히 일상을 남기려 한다.

그 밖에, 20대를 살며 좋아하는 책이 한 권이 있고 좋아하는 시를 알며 듣기 좋은 노래를 가지고
즐길 줄 아는 영화를 알고 보았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20대에 내내 해 온 일들이 더 많이 있지만 다 채울 수는 없다...
이렇게 돌아본 나의 20대는 수 많은 것들로 인해 그 어떤 용기에도 다 채울 수 없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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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대를 넘어가며 30대에 가까울 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있다.
화려한 모습보다는 진실한 인생들의 모습들, 마음을 바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이 많아진다.

이제 서른 30대의 시작이다. 슬프기도 하지만 다가올 일, 해 나가야 할일,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다 보니 벌써 30대가 즐거워진다.
아직 살아 숨쉬는 열정을 가지고 30대를 맞아 들인다.

2009/10/23 00:13 2009/10/2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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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Chester 2009/10/30 02:36  address  modify  write

    You can still go Harvard.
    Why do you always limit your dream just as a student.
    You can go there as a faculty!
    Keep your dream!!!

    • Gerontology 2009/10/30 14:47  address  midify

      그러게 말입니다...
      꿈을 자꾸 크게 가져야 하는데...

      자꾸 자꾸 작아져 갑니다...

      다시 꿈을 키워볼까요...

      근데 추운 겨울 때문에 더 이상 보스톤에 머물기는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