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기 참 힘들다고 말한다. 요즘 세상은 정이 뚝 떨어질 만큼 각박하다.
아름다운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보다는 어두운 것들이
신문의 쳇 페이지에 너무 자주 실린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말 잘하는 정치가 아니고,

돈 셈 밝은 경제인도 아니고,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그 어떤 유명 인사도 아닌,
아직도 따뜻한 정을 나누는 우리 소시민 이웃들이다.
내가 최근에 만난 아름다운 우리 이웃이다.

평생을 해 오던 공부를 느지막히 새로이 시작했던,
나의 영어 선생, 미국 친구, 할아버지, 70 넘은 John이 석사학위 받는 날이었다.
발보아 공원 오르간 연주장이 졸업 무대였다.

식자체보다는 사진 찍는 것이 나는 더 좋았다.
지긋한 나이에 오랫동안 공부하셔서  받는 학위이니 만큼, 좀더 많이 더 잘 찍고 싶었다.
카메라 가방을 맨체 식장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한눈에 미국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에서 이민을 온
아주머니 같았다. 예전에 살던 동네가 워낙 다민족이 있던 곳이라 대충 민족별 옷차림을 보고
추측할 수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그 아주머니도 영어가 서툴었다.

"학교에서 고용된 사진사인가요? 돈을 받고 사진을 찍나요?"
"아뇨, 그냥 친구 찍어주는 거예요"
"남편 졸업인데 가족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어요"

손으로 음료수를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캔 콜라 하나 사줄께요. 좀 찍어 주세요"
내가 못 알아 듣는 줄 알고 계속 손짓을 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그냥 찍어드릴께요. 자리가 어디예요"

가슴이 찡했다. 아주머니의 순박한 행동에 너무 감동했다.
미안하니까 음료수라도 사주겠다는 정성의 표시였다. 사심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한 장의 사진을 부탁했을텐데, 아주머니의 순수한 마음이 좋았다.

아주머니를 찾지 못해 사진을 못 찍어주어 아쉬웠다.

두번째 이야기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샌디 에이고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뛰듯이 걸었다.
어느 새 게이트에 도착하고 숨을 쉬고 주위를 돌아봤다.

복잡하고 어수선 한 대합실의 수 많은 외국인 중에서 구석에 자리 잡은 동양 승려가 보였다.
고개를 잠깐 멈짓했다. 물론 승려도 동양인 나를 유심히 보는 듯 했다.
한국 승려는 아니고 동남아 쪽이나 티벳 승려 같았다.

우연히도 비행기 좌석도 앞 뒤였다. 그렇다고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비행기에서 내린 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5시간의 비행거리에 나는 벌써 지쳤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음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한순간에 피곤함에 잠이 몰려왔다. 배도 고팠다. 셀레이는 여행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힘이 드니 얼굴 표정이 좋을리 없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듯 굳었다.
안그래도 힘이든데 짐까지 늦게 모양이어서 서 있기도 싫었다.

짐이 나오면 어서 갈려고 카트도 미리 챙겼다.
10분, 20분이 지나도 짐은 나오지 않고 황당해서 빈 카트만 끌고 이리저리 다녔다.
끝까지 짐이 나오지 않자, 피곤하기보다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연신 고개만 두리번 거리며 짐 나오는 곳을 보았다.
결국, 씩씩거리며 숨소리를 높이며 분실신고를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내 앞에 있던 중국인 같은 아주머니의 일은 쉽게 끝이났다. 근데 인도 아저씨가 트집을 잡았다.

분명히 항공회사에서 아니라고 말하는데 끝까지 묻고 서있었다.
끓고 있던 화가 치밀어 올라 욕이 나오면서 얼굴색이 완전히 변했다.
내 차례가 오자 아까 그 중국 아주머니가 왔다.

"괜찮아요. 무슨 문제있어요?"
"네 괜찮습니다. 짐이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어디서 왔어요?"

"샌디 에이고에서 왔어요"
"언제 왔어요 영어 잘해요"
"오늘 왔는데 미국 온지는 6년째예요. 영어할 수 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제서야 아주머니께서 멀리 손짓을 하며 저기에 계시는 라마 승려께서 나를 도와주라고 보내셨다고 했다.
비행기 타기전부터 보았고 내려서도 계속 보고 계신 것 같았다. 같은 동양인이라서 친근감이 온 것일거다.
지친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승려들이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마중 나온 자기 가이드를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순간, 온 몸에 전율이 느끼며 행복했다. 바로 이런 맛에 세상을 살아가는구나.
타지에서 처음보는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아름다운가 보다.

나는 숙연히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승려에게 작은 목례를 했다. 감사의 표시였다.
승려도 눈인사로 답례를 했다.
결국 짐은 다음 비행기에서 찾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나도 그들의 순수를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2006/09/30 09:04 2006/09/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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