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운동화 한번 신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고등 학교 교실에서도 나이키 운동화는 최고의 인기 소재였다.
조단의 에어 시리즈는 9만 9천 900원으로 9만원대 신발이라고 광고했다.

고등학교 다닐때  나이키 농구화는 유난히 더 인기였다.
10만원을 호가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을 수가 없었지만,
어린 시절 시골 동네에는 한국식 나이키가 있었다.


어떤 이는 한국산 나이키라 하지만
, 내가 자란 동네에서
흰색의 조선 나이키로 통했다.
바로 고무신, 새 하얀 고무신.

이 고무신 한짝으로 세상의 모든 놀이를 즐길 수 있었고,
언제든지 신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신발이었다.
여름철에는 고무신이 최고였다. 마른 땅, 젖은 땅,거랑 (냇가)까지 마음껏 신었다.

물에 젖어도 금방 물기를 털어내고 바로 신을 수 있기에 걱정이 없었다.
올챙이를 잡아 마땅히 둘때가 없으면 고무신 하나에 물 가득채워 어항으로 만들었고

요리 조리 잘 접어 막대기로 앞 뒤를 이으면 고무신 자동차도 만들었다.

청송장날 아버지는 일찍부터 장에 가서 꾸려온 짐들 속에 만능 흰 고무신 한짝이 들어있었다.

어쩜 그리도 내 발에 잘 맞는지. 나는 신자 마자 성능을 시험가려 갔다.
물에도 들어가고 요리조리 접어서 고무신 차 만들어 흙도 날라보았다. 내 마음에 속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능 시험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물놀이를 시작했다.
새 신발이라 그런지 발에서 자꾸 빠지자
그렇게 벗겨진 고무신은 세찬 물길을 휘말려 떠 내려갔다. 계속 뛰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지께서 새로 사 주신 고무신은 멀리 멀리 가버렸다.
새신을  잃어 기운이 없어지고  혼나겠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저녁이 다 되어 맨발로 한 손에 고무신을 들고 집 앞을 서성이었다.


어머니는 빨리 밥이나 먹어라 하셨고,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다음 장날까지 5일을 어떻게 기다리나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새벽 아침 논에 물을 대고 아버지께서 들어 오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손에 든 고무신, 새로산 바로 그 고무신이었다. 물에 떠내려간 고무신은 논 도랑으로 흘러들어

좁은 도랑을 따라 다니다가 우리 집 논 근처 풀 더미에 걸렸다가 아버지 눈에 띄 인것이다.

그렇게 아버지 고무신을 찾아주셨다.  그해 여름, 나는 고무신 한짝으로 잘 보냈다.

우리 아버지 고무신 사건을 기억하실까.
여름 날 고무신이 떠오른다.
이제, 신어보기 힘든 추억의 고무신.


2006/07/22 08:42 2006/07/22 08:42
TAG ,

trackback :: http://koreangerontology.com/blog/trackback/8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