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테니스가 뭔지도 모르고 좋아 했었다. 정식으로 배우기는 커녕 라켓 한 자루로 없던 시절이었다.
TV 중계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테니스 관련 뉴스가 나오면 제일 좋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볼려고 기를 쓰고 그랬다.

나는 테니스의 매력에 점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아주 멋진 경기를 보았다.
94년 6월, 영국에서 윔블던이 한창 열리던 중.
한국에도 잠시 테니스 열풍이 불었고 한국 테니스계를 긴장 시키고 들뜨게 만들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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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주니어부 여자 결승전에 당시 여고 2년생 전미라가 올랐다.
주니어부지만 한국인이 결승전에 오른 사실은 충분히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제 앞으로 세계 여자 테니스계에 당당한 주역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고 키가 큰 체형의 전미라는 당당했다.
이에 맞서는 상대 선수는 스위스 출신의 마르티나 힝기스, 16살 동갑내기였다.
관중들의 기대 속에 서브가 들어가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전미라를 응원했다. 막상막하의 경기가 될 줄 알았지만,
한 박자 빠른 템포의 힝기스 스트로크가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그렇게 게임은 힝기스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결과도 2대0의 힝기스의 완승이었다. 승부의 냉정함에 16세 소녀의 앳된 모습은 없었다.
저렇게 활짝 웃으며 트로피를 들었던 힝기스
그후 잠시동안 여자 테니스계를 호령했었다.

한 템포 빨랐던 스트로크는 나도 모르는 함성을 지르게 했고 이쁜 얼굴은 만인에게 매력이었다.
그리고 3년 뒤 97년 힝기스는 주니어가 아닌 성인부 윔블던 결승전에서 한번더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뜻하지 않았던 낙마로 부상을 입은 힝기스는 후유증을 딛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힝기스, 나는 다시 너를 응원하고 싶다. 그 예전 나의 테니스 열정을 더욱 뜨겁게 해주었던 그 순간으로.
한편, 그후 전미라는 세계적인 대회에서 보기 힘들었다.
우리 나라 테니스계를 흥분 시키고 계속 성장 해주길 바랬지만,

그러나 그 역시 코트를 떠나지 않고 한국 최고의 테니스 잡지사의 기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온 힝기스와 옛정을 간직하며 해후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후 가수 윤종신과 결혼한다고 한다.

사진은 그 기사에서 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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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1 12:25 2006/10/2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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