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방치해두었던 나의 블로그에 다시 손을 대기로 했다.
새로운 단장도 아니고 지저분한 댓글 정리도 아니고 다시 글을 써야겠다.
업데이트, 어떤 글을 먼저 쓸까.

나의 글쓰기가 멈추어진 2014년부터 2018년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삻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을 어떤 순간부터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제일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Robin의 이야기가 제일 좋을 것 같다.

2016년 3월 26일 결혼했다.
아이 한 명은 갖자고 결혼 전에 와이프랑 약속을 했다.
하지만 사실 그렇다. 나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욕심이 없었다.

여려명의 조카들이 태어나고 키워지는 모습들이 너무 힘들게 보였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와이프는 아이를 원했다. 아이 없는 부부의 삶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했고 약속은 지켜져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와이프의 친구들로부터 하나 둘 소식들이 들려왔지만
주변에 임신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부부들이 많아서 우리 부부도 역시 임신은 쉽게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2016년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에 와이프는 어딘가 아파보이며 많이 피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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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라고 믿었기에 테스트기를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와이프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것으로 하나 구입했다.
가을날 어느 토요일 새벽, 테스트기를 들고 침대 곁으로 왔다. 나는 이미 표정관리에 실패했다. 고로 점수를 잃었다.

좋지도 실망하지도 않은 그런 내색이었다.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겠어).
십자 모양의 가운데 선이 불확실했다. 와이프도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부랴 부랴 병원에 가서 예약을 하기로 했다. 왠걸 문 앞에서 돌아섰다. 전화로 예약하고 오란다.

첫 검진날, 흑백의 아주 작은 모니터로 콩알 만 한것이 콩닥 콩닥 뛰는 모습을 보았다. 임신 8주라 했다.
나는 또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아직 철이 없다). 점수는 계속 떨어져 갔다.
콩닥콩닥 뛰는 생명의 한 순간이 너무 신기했다. 걱정도 앞섰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 가짐이 바뀌었다. 좋은 생각에 바른 행동을 해야했다.
우선 와이프를 편안하게 해주어야 했고 섣불리 지인들이랑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우리 부부끼리 조심히 행동했다.
애기 태명보다 이름을 먼저 생각했다. 영어 이름에 한국 가족들도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만들기로 했다.

사실, 와이프는 이미 이름을 정해 두었다 (남자는 온유 여자는 가원) 며칠 밤 동안 수 만가지 이름을 부르다가
Robin으로 결정했다. 영어식의 혼성 이름이었고, 한국식으로 "로빈" 발음도 쉬어보였다.
"로빈 리" 나쁘지 않게 들렸다. 학교 사람들도 남자 아이, 여자 아이 둘다 어울린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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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태명을 지었다. 우리 집 족보에 따르면 후대는 "호"자 돌림이었다 (승호, 인호 조카).
하지만, 영어 발음상 최악의 돌림자였다. 나는 태명에 돌림자를 넣어서 "호구"라 불렀다.
사실 와이프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름대로 '호구'된다고. 그 호구가 아니라 호랑이 '호'자에 멍멍이 '구'다. 그래서 호구.

나는 호구라 불렀다. 그 힘들었던 입 덧을 이겨낸 와이프의 모습에서 호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콩알이 눈 코 입이 뚜렷할 정도로 자랐다. 생명이란게 마냥 신기했다. 호구의 모습을 보니
단번에 나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앞 짱구 이마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나의 어릴적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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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아이를 본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이 세상 모든 아빠의 심정이 이럴까
내 자식이 곧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니까 점점 기분이 이상해져 갔다.
지난 시절의 어이 없었던 생각들은 다 사라지고 앞으로 만나게 될 호구만을 생각했다.

과연 호구는 어떻게 태어날까. 저 모니터의 모습처럼 나를 많이 닮아 있을까.
와이프는 몸의 한계를 느끼며 점점 힘들어 했지만 나는 또 몰랐다. 점수는 또 떨어졌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남편도 그 고통을 느껴봐야 한다고.

와이프가 그렇게 고통을 같이 느껴 주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렇게 몰랐다.
그렇게 힘들냐고 물어보기가 다 반사, 나는 그렇게 호구 같은 아기였다.
2017년 5월28일 새벽 2시경 호구를 처음으로 보았다.

새 생명의 탄생은 우주의 신비라 했는데 그 순간 아무 느낌 없었다.
호구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나는 모든 점수를 잃었다. 죄가 많다.
2018/12/29 12:45 2018/12/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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