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보스톤에 살면서 저기 아랫 동네 Washington, D.C.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한 번은 학회 때문에 내려가게 되었고, 두 번은 여행삼아 가서 미국 정부의 요지를 둘려 보았다.
두 번의 여행 중에 한 번은 National Mall 옆동네 강 건너 Arlington National Cemetery에 갔었다.

여행 책자에서 해가 지는 무렵,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저 멀리 언덕 아래에 보이는
화이트 하우스가 더 이쁘게 보인다는 소개를 읽은 적이 있었다.
마침 찾아간 시간이 바로 해가 지는 동안 붉은 노을이 피어오를 찰라였다.

늦은 오후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알려준 대로 방문로를 따라가니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케네디 대통령 묘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언덕 위 높은 곳에서 저 멀리 화이트 하우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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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마주보는 듯한 모습이 아주 멋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큰 소리 한 번 들리지 않는
적막한 분위기는 숙연한 기운으로 바뀌어 지는 듯 했다.
들어왔던 입구를 나서면서 왠지 모를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내 나라 내 조국, 대한 민국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을 했었고,
그 뜻을 기리고자 마련된 곳이 있었는데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한 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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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한국에 몇번 갔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서 국립 현충원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2011년 여름, 대전에서 근무하는 형님 집에 들를 일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현충원 표지를 보았다.
알고 보니 형이 있는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대전 국립 현충원이 있었다.

다음날 다시 대구로 내려가기 전에 오전에 여유가 있었다.
택시를 타고 얼마지나지 않아 현충원 정문에 내렸다. 우선 안내 지도라도 받을까 해서 들른 안내소에는
그런 지도는 없다고 했다. 참배하러 왔냐는 차가운 음성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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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 터벅 걸어가는데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큰 안내 지도가 서 있었다.
지도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국가 원수 묘역이었다. 제일 먼 곳에 있었지만 우선 그 곳에 들렀다가
내려 오는 길에 다른 곳에 들릴 생각으로 대강의 경로를 그렸다.

올라가는 길 옆으로 넓은 잔듸 위로 수 많은 묘비들이 선을 맞추어 서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 보든지 바른 선을 맞추고 있었다. 비스듬한 언덕을 걸어올랐다.
간간히 참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중간 쯤 왔을까. 항일 애국지사의 묘를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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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얼마 오르지 않아 국가 원수묘역에 다다랐다. 누가 있을까 궁금했었다.
언덕 중간 쯤 마련된 첫 번째 묘에는 고 최규하 대통령 내외분 묘가 있었고 나머지는 빈 봉분이었다.
빈 봉분은 세월이 지나면 제 주인을 맞겠지. 허한 기분이 들었다. 기대감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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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를 돌아볼 생각으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에 장군 묘역이 있었다.
일반 병사 묘비에 비해서 좀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계급 사회의 군대는 죽어서까지도 그 계급이 지켜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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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을 내려 다시 평지에 이르니 참배객들이 더 많이 보였다. 사거리에서 눈에 들어오는 표지가 있었다.
한 동안 대한 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평도 폭격 희생자랑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묘역 안내였다.
기차 시간에 가까웠지만, 조금만 빨리 걸으면 충분히 다녀올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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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사건 때문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큰 길을 향하지 않고 묘역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중간 통로를 따랐다.
묘비의 뒤에 쓰여진 연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부분 묘비들이 2000년 이후의 아주 최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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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떤 묘비는 2009년 2010년 있었다. 최근에 큰 전쟁의 기억이 없는데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니.
적잖이 놀랐다. 이 순간에도 남을 위한 값진 희생이 있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란 것은 군인들 뿐 아니라 경찰, 소방공무원, 일반 행정 공무원까지 있었다.

다 똑같이 공공의 헌신한 사람들이기에 어느 하나 소홀한 희생은 없을 것이다.
정문에서 보았던 위령탑으로 향했다. 현충원이라고 쓰여진 정문을 지나서 위령탑 앞에 향이 불타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묵념을 했다. 나오는 길에 부탁으로 인해 방문자에 기록을 남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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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탁은 좀 억지같았다. 마지막으로 현충원을 나서기 전에 들른 곳이 있었다.
기념관 비슷하게 각종 자료들이며 중요 사건의 설명이 있었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보니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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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한 곳에 이르니 도덕 교과서에 볼 듯한 진정한 영웅의 일화가 있었다.
남을 의해 희생한 대단한 이야기였다. 살신성인의 진정한 표본이 아닐까.
짧은 시간에 부지런한 걸음으로 제2 대전 국립 현충원을 한 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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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서 시원한 물을 마셨다.
한번은 와 봐야 할 곳을 비록 늦게 왔지만 이제 다녀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지난 날 먼 나라에서 느꼈던 죄책감은 이제 조금 덜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전화에서 왜 갔었냐고 머 특별한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대한 민국 국민으로 한 번 와보고 싶었다 했다.
다른 느낀점은 없냐기에 참배객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방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평일이라서 방문객이 많이 없었는지 제2 국립현충원이라서 많이 없었는지.

한 바퀴를 돌며 내내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나라 사랑 조국 사랑을 생각하며 한 번은 방문해야 하는 곳.
2011/11/11 08:34 2011/11/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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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Chester Kim 2013/01/19 02:06  address  modify  write

    미국은 국립묘지도 거의 관광코스지만 한국은 인식이 좀 다르지.
    아이들 데리고 산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친근한 장소로 만들면 좋을텐데..
    독립기념관은 가 봤냐?

    • Gerontology 2013/02/11 05:49  address  midify

      독립 기념관 가봐야 하는 곳인데 아직 못가봤네요.
      다음 한국행도 꼭 다녀가야 할 곳으로 정해 두어야겠어요.
      현충원은 미국식 문화랑 많이 틀린 곳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