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notice2009/12/28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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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빠른 것도 아니고 느린 것도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는게 아니라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라 하지만...지나간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난 토요일 8월 5일은 내가 미국에 온지 6년이 되는 날이었다...

생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꼭 챙기는 날이다...6년째 되는 올해도 역시 구희 형이랑 함께 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온 구희 형은 미국에서의 나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같이 하는 술 한잔에 나오는 옛 이야기는 구수했다...

2000년 8월 5일 샌디 에이고 공항에 내렸다...물론 누나가 마중을 나왔다...
어학 연수를 올 수 만큼 우리집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 때문에 70이 넘은 부모님은 들에 안 나가는 날이 없다...

우선, 누나 집에서 지낼 수 있을수 있었기에 생활비는 들지 않았다...
처음 가져온 돈으로 학비를 내고 남은 돈은 내 용돈이 되었다...
얼마되지 않은 돈이었기에 최대한 검소한 생활을 했다...점심은 1불짜리 햄버거 였다...

버스 비도 비싸서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버스비 왕복 3불 50은 너무 비쌌다...한달짜리 패스도 비쌌다...
어느날 벨기에 친구를 통해 한 학기짜리 패스가 112불 한다고 해서 나중에 이 패스를 샀다...
예외가 없었다...어느덧 학기가 지나갔다...한국에서 들어오라고 난리가 났었다...

처음부터 1년 이상을 생각한 나는 들어가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나도 많이 힘들어 했었다...아마 중간에서 나보다 더 힘들여 했다...
미국 문화의 매형 식구들은 스무살이 넘도록 집에다 손 벌리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누나는 매일 같이 들어야 했다...
나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서 속 앓이를 했다...나는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어,
다음 학기를 위해 부모님께 부탁을 해서 돈은 더 받았다...

2001년 1월이다...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떠났고 학교를 옮기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SDSU 안의 ALI를 다녔다...같이 밥먹을 사람들도 없었다...
그냥 간단하게 스낵으로 요기를  때우고 랩에서 영화를 보면 시간을 보냈다...

영화를 하루에 2편씩 꼬박 보았고, 청강도 들어갔다...원래 나의 레벨에서 청강할 자격이 없었지만,
나는 무작정 수업 시간표를 가지고 내가 듣고 싶은 찾아가서 교수님께 사실 대로 말하고 수업을 들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따라 들었다...내가 알기로는 ALI 학생들 중에 아무도 시도를 하지 않했던 것 한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대단한 놈으로 보았다...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장의 돈은 줄기만 했다...
그러는 중 다운타운의 Adult School을 다녔다...그전에 학교에 보던 사람들이랑 다른 면이 있었다...
구희 형도 만나고 지금은 떠나 가버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제 더 이상 돈을 받을 곳이 없었다...

7월 언젠가 통장을 보니 38불이 남아 있었다...주머니에 있던 3불을 ATM 에서 입금을 하고 20불을 빼고
나머지는 남겨 두었다...뭔가를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한인 업소록을 보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차가 없었기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지금의 Convoy 쪽은 생각도 못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이 더 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같이 공부하던 누나와 다운 타운 근처를 다녔다...
7월 셋째 주, 마지막으로 홀튼 플라자에 갔다...의외로 한국 주인이 많았다...

운이 좋게 프렛즐 아줌마가 나를 좋게 보았는지 일단 연락처는 남겼다...한 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자,
한국에 전화를 하고 비행기 표를 살거라고 돈은 부탁했다...그리고 다음날 연락이 왔다...
일을 시작할려면 토요일 대 청소를 할 때 오라는 것이었다...일을 할 수 있다는데 청소가 문제냐....

찬란한 빛이 보였다...경사가 났다...집에 바로 전화 해 돈이 필요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일을 배워가며 열심히 했다...
주인만 한국인이지 종업원이랑 손님은 완전히 미국인이라 영어를 배우기에 더 좋을 수 없었다...

즐겁게 일을 시작했지만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다...내가 잘못 하는지, 아줌마의 요구가 많은지...
그냥 힘들었다...연말이 다가오고 마음이 뒤숭숭 해지니 놀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친구에게 장난으로 일을 죽어라고 한다는 말이 아줌마 귀에 들어갔다...

이것이 화근이 되고 크리스 마스 날 전화가 왔다...일을 그만 나오라고...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정말로 거의 매일 같이 쉬는 날 없이 일을 했는데...조금 흐트려져 실수 한것으로 나를 버리다니...
억장이 무너졌고 누나 또한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다시 공부한다는 생각에 칼리지에 등록도 했는데...

내 손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들었는데...1주일 간 일자리를 찾아 보았지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다시 걸려온 전화 해이해진 나를 욕먹이기 작전이었다냐.

2002년 1월...

학교를 시작했다...어학 연수생이 아닌 유학생 인것이다...오전에 학교 갔다가 오후에 일하러가고
주말에 밀린 숙제를 했다...버스 타며 다니는게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니었지만 참아야 했다...
아직은 차를 살 여유는 없었다...학비와 생활비 만으로 숨이  턱까지 찼다...

목돈인 학비는 누나 카드로 내고 매달 번 돈으로 조금씩 갚고 나머지 돈 또한 계속 모아야 했었다...
학교 공부에다 일까지 스트레스가 많았다...스트레스가 많으니 실수도 많았다...
이제 아주머니가 온갖 일로 트집을 잡았고 휴대폰을 주면서까지 나를 찾기 시작했다...

일만 터지면 전화가 왔다...일하러 오라고 문제가 생기면  전화를 통해 일일히 다 말했다...
하루 이틀 아니라 거의 매일, 정말 힘들었다...불편한 심기에 인상을 쓰고 다니는 누나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내가 일을 그만 두고 싶다는데 동의를 했다...폰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러덩 했다..

내 폰이 아니어도 가슴이 뛰고 불안해 하는 마음병까지 생겼다...
그리고 7월 어느날 일을 시작한지 1년이 안되어 일을 하다가 앞치마을 벗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만 두었다...나를 이해해준 누나에게 감사한다...

운이 좋아 바닷가에 있는 옷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방학 동안은 할 수 있었다...
아침 8시까지 일하러 갈려면 6시에 버스를 타야했다 9시에 문닫고 버스 타고 집에 오면 11시가 넘었다...
비록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그리고 삶에 대한 오기도 생겼다...

늦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세상의 다른 면도 보았다...인생에 대해 점점 독해져 갔다...긍정인 방향으로 말이다
나에게는 오직 2가지만 있었다....공부 그리고 아르바이트, 이것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다 하기 힘들었다....
2002년 9월 방학 2달간 일만 했는데 돈이 모였다...한 동안은 일을 안해도 될 것 같았다...

이제 조금 자신이 생겼다...친구가 소개해준 그레이 하운드 옆 델리 샾에 일자리 구하려 갔다...
운이 좋았는지 일을 바로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일했던 프렛즐 아줌마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엄청 주었지만 일은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지금에야 알았지만 나를 키울 생각으로 많은 것을 철저히 가르쳐 주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는것 같다...
그 때 배운 것을 델리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부모님께 물려 받은 성실성에 일까지 더 잘했으니
매일 칭찬을 들었다...나를 인정해주니 나 또한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학교 공부도 많이 적응이 되었고...향상 같았던 스케줄은나를 안정적으로 해주었다...

2003년 봄
봄이다 봄이 끝나고 바로 겨울이 오는 것 같았다...갑작스레 델리 주인 바뀌었다...
일자리를 또 구해야 되는 구냐...근데 전 주인이 나를 좋게 보았다...
바뀐 주인도 일을 아는 사람이 필요했는지 나를 계속 고용했다...

사장이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은 형이었다...맥주 박스 들고 콜라 박스 드는게 힘드는 일이었지만...
칼리지 다니는 동안에는 이만한 일보다 좋은 일이 없었다...물론 앞날도 더 환하게 보였다...
이제 곧 편입도 준비했어야 했다...모든게 안정이 되었다...여유도 생겼다...

구희 형이랑 맥주도 마음 놓고 한잔 했다...누나도 많이 좋아했다...밝은 인상이 좋다고 했다...
나도 누나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고 누나도 나에 대해서 만큼은 당당할 수가 있었다...
누나네도 좋은 일이 생기고 그랬다...

2004년 드디어 차를 샀다...

칼리지에서 같이 공부하던 성아 누나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직 괜찮은 차였기에 내가 살거라 했다...1월5일 운전대를 잡았다...면허는 2002년 봄에 미리 가지고 있었다...
차가 있으니 좋았다...우선 시간 절약이 많이 되었다...버스 타고 오면 10시에 일을 마쳐도 집에 오면

11시가 넘었는데, 일마치고 10분 만에 집에 왔다...4년간 타던 버스랑 트롤리가 그리웠다...
지난 4년간 샌디에이고 있는 모든 버스는 다 타본 것 같다...사람들은 버스타고 어떻게 지내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 차가 없어서 일 못한다고 누나에게 한 핑계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자기가 정말 필요하면 못하는게 없다...이래서 저래서 못한다 말은  정말로 핑계 뿐이다...
내가 미국 삶에서 값지게 배운 것 중 하나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SDSU로 무사히 편입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학기 중이었다...
심각한 줄 알았는데 큰형이 그리 큰일은 아니니 다음에 비자 연장할 때 오라고 했다...

그래서 우선 누나가 다녀왔다...6년만에 한국 누나는 그저 재밌고 좋았다고 했다...
어머니 사건 땜에 일하던 곳과 틈이 생겼다...더 이상 일 할 마음이 없었다...방학 동안 돈을 더 벌고 싶었다...
방학 동안 할 수 있는 곳은 바닷가 옷가게 였다... 2년만에 찾아갔다...나를 받아주었다...

차가 있어 일하러 가기도 편했다...6월 7월 8월 3개월 일만했다...하루 13시간 한달에 한번 쉬고 일했다...
주변인들은 아주 독종이라고 놀렸다. 내 갈길은 아직 멀었고 아직도 부족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했었다...
누나도 나를 이제 처음 미국왔을 때랑 다르게 보았다...그렇게 일만 했다...

많은 돈을 모았지만 SDSU 학비가 칼리지에 비해 장난이 아니므로 한번에 다 썼다...
하루 아침에 통장이 바닥이 되었다...일자리도 바꿔야 했다...
수업이 오후에 있어서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했다...일자리 찾는 만큼은 이젠 두렵지 않다...

마침 일하면서 알게된 한 아주머니 친구가 새로 델리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다...바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델리가 처음이고 나는 델리가 2년째 하던 일이라 너무 쉬웠다....
물론 일 잘하고 성실한 것은 나의 전매특허 인 관계로 인정은 항상 받았다...

2005년 무난해를 보냈다...

노인학을 시작한것에 대한 자부심도 많이 생겼고, 뭔가에 쫒기는 듯한 불안이 없었다...
제일 좋아한 사람은 누나였다...여름에 한국에 가서 비자도 무사히 연장했다...5년만에 간 한국은 부담스러웠다...
어색하고 신기했다...오랫만에 가족이랑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았다...

학교도 이제 완전 적응이다...과가 작은 관계로 친구들이랑 쉽게 친해졌다...

2006년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내년에 아마 정든 샌디에이고르 떠날지도 모른다...누나가 타주로 이사를 가서 변화가 많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누나가 떨어져 있지만 모든 것에 문제 없다...
산전 수전 다 겪었다는 말이 새삼스레 다가오는 해이다...너무 안정이 되었는지 독한 모습이 많이 죽었지만

가야할 길을 멈추지 않았다...아직은 멈추어 설때가 아님을 스스로 더 잘았다...
나태해졌다고 하니 이제 사람들이 조금 그럴때도 되었다고 해서 고마웠다...나 정말 열심히 살아온 걸까...
미국 생활 6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아직도 철들어 가지만, 철이 제일 많이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폐를 덜 끼치며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능력도 키웠다...꿈이 뭔지도 알았다...
정말로 나는 독하고 못된 놈이다...이렇게 살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처음 단추를 잘 끼워 놓은 것 같다...일을 한인 타운 근처에서 했다면 이렇게까지 못 왔을 거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항상 옆에서 있어준 누나가 고맙다...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준 구희 형도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많이 배웠다...
나의 이런 모습을 옆에서 봐준 누나나 구희 형이 이런 글이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잠시 쉬어 가지만 나는 다시 달릴 준비가 되어있다...

2007 여름...

정말 열심히 달렸다...미국 오기전 그 예전부터 대륙을 횡단하고 싶었다...
마침,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봄에 받고 여름에 샌디 에이고에서 보스톤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는 김에 운전을 해 대륙을 가로 질러 보스톤에 갈려 했다 서쪽 해안에서 동쪽 해안으로...

같은 미국 땅이라 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가 있는 곳 미지 세계의 보스톤으로 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
9월에 대학원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주욱 해오던 노인학 공부이었지만, 많이 생소했다...
수업도 어렸고 노인학을 접근하는 방식도 힘들었다...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 영어였다...

겨울에는 캘리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무료하게 보낼 크리스 마스가 될뻔 했지만
규만이 형이랑 형수가 와서 겨울 보스톤 여행도 했고 뉴욕에서 크리스 마스를 맞았다...
그리고 저 멀리 디씨까지 내려가서 함께 샌디 에이고를 떠나왔던 헌기형도 만났다...모든 즐거운 시간...

2008년 여름...

대학원 생활 1년을 마쳤다...조교 생활 덕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안해도 되었고 여유도 많이 생겼다...
한국에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대학원 생활이 바빠지면 못 갈것 같아 한번 다녀 오기로 했다...
3년만에 만난 가족들 친구들이 다 좋았다...그리고 박광국 교수님의 도움으로 정광열 신부님도 만났다...

말로만 듣던 꽃동네도 신부님 덕택으로 구경을 하고 앞으로의 좀더 희망찬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정말 오랫동안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보스톤으로 돌아왔다...

보스톤에서 대학원 2년차 생활을 시작했다...유매스 보스톤 노인학과 박사 준비생들이 반드시 거쳐야하는
수업을 시작했다...들리는 소문대로 어려웠다...
겨울에 캘리에서 찾아온 구희 형이랑 경아 누나가 다녀 간뒤 심각한 우울 증세를 가졌다...


2009년 겨울...

학기가 시작되며 공부는 더 힘들어 졌고 몸과 마음은 더 지쳐갔다...
여름까지 오기로 잘 버텨왔다...새로운 계기가 필요했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을 필요가 있었다...
다시 한국을 찾았다...역시 신부님을 만났고 신부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좀더 나아갈 수 있는 힘까지도...

2달을 보내고 보스톤에서 3년 이제 거의 막바지 수업을 시작했다...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못할 것 같은 마지막 힘든 수업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이번 학기부터 같이 일하게 된 베쓰 교수님 덕에 미래의 내 캐리어를 쌓는데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2010년 여름...

보스톤 생활도 3년째 벌써 3학년이 되었다...학교에서 어느덧 고학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학기를 정말 바쁘게 무사히 보내었다...베쓰 교수님이랑 진행중인 연구도 재미있다...
보스톤의 겨울은 아직 춥지만 여기 생활이 정들어 간다...하지만 나는 샌디 에이고가 좋다...

6월이 지나갈 쯤 샌디 에이고에서 비보를 듣고 얼른 날아갔다...파파가 많이 아팠다...
다행히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비록 긴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따뜻한 손 길은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생활의 힘이 되어주었던 파파를 볼 수 없어 슬픈 여름이었다...

슬픈 일이 있었고 기쁘고 행복한 일도 있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복이다...
내 사랑을 정말 잊을 수 없다...이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해 주고 싶다...

보스톤에서 처음을 여름을 보냈다...보스톤 여름은 더웠다...
학교 생활은 이제 완전이 적응이 되었다...시간의 여유가 많아졌다...3년을 살아본 보스톤 그리 나쁘지 않다..
서부에 비할 수 없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이제 그것을 좀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조교 생활로 인해 생활이 많이 안정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가진 능력들이 많이 커진 것 같다...하지만 알고 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나는 더 높은 도약을 해야 한다...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야한다...

지금 최고의 순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을 열심히 하고 싶고 이쁘게 가꾸어 가고 싶다...
그대여 나를 사랑해주어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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