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에 이사 오던 그 첫 해에 눈이 몇번 왔었다.
하지만, 소문으로 떠들던 혹독한 눈 바람은 아니었다. 겨울에 어김 없이 한번 씩 눈이 내렸다.
올 겨울이 시작하기도 전에 잠깐 눈이 내렸지만, 그렇게 쌓인 것도 아니었다.

그 마저 어렵게 쌓인 눈이 이상스런 높은 기온으로 금새 녹아 버렸다.
올 겨울 보스톤에는 찬란한 겨울 눈이 내리지 않았다.
1월이 가고 2월로 넘어서며 겨울은 이내 물러가는 것이 못 내 아쉬운 듯 비바람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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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 눈폭풍, 블리자드가 금요일 (2월8일)에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 되었다.
으레 겨울이면 한번 오는 블리자드라 생각했다. 금요일부터 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음력설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조용히 집에 머무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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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눈이 얼마나 올지 미리 뒷 마당 사진을 찍어 두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 아직 거센 눈보라는 불어오지 않았지만, 곧 눈이 올 기세는 보였다.
조금씩 내리던 눈 금새 녹아버리곤 했었다. 오후에 들어서며 눈발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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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눈쌓이는 모습이 차곡 차곡 들어왔다. 바람도 조금씩 거세지는 것 같았다.
저녁 시간에 더욱 거세진 바람결에 희미한 불 빛 사이로 눈이 날렸다.
한껏 쌓인 눈으로 나무 가지들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무척이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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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보의 정확한 예측처럼 밤 9시경을 지나면서 블리자드는 절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어느 새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간간히 눈을 치우는 트럭이 간간히 앞 마당길을 지나 다녔다.
앞 마당으로 내려지는 희미한 불 빛 사이로 휘이잉 거친 바람 소리가 눈 앞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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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방 안으로 들어와 한국으로 전화해 설날 분위기를 들으러 했다.
한번씩 불빛이 찰라로 깜박이는 것이 어쩐지 전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번 몇번 그렇게 찰라의 순간이 있더니 어느새 한번에 불 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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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오직 보이는 것은 검은색이 전부였다.
더 이상 거친 바람 소리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종료되는 것 같았다.
미리 충전해두었던 랩탑의 배터리가 다하면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밤새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온기가 다 빠져나간 방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눈이 얼마나 왔을까 궁금한 마음에 옷차림도 다 갖추기전에 어서 뒷마당 문마당 문으로 향했다.
어엿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 밤새 쌓인 눈으로 출입문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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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마음을 접고 다시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챙겨신고 억지로 조금 열려진 문틈 사이로 몸을 빼집어 냈다.
밤새워 정말 눈이 엄청 온 것 같았다. 밤사이 마당은 바뀌어 있었다. 우선 엉겁결에 문 주변 눈을 치우는데
손이 금방이라도 얼어 터질 것 같았다. 옷가방 구석으로 밀렸던 장갑을 겨우 찾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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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눈을 치우기 전, 당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냉장고의 중요한 음식을 눈에 묻었다.
그리고 눈이 얼마나 왔는지 표식을 해 두기로 했다. 계단부터 차근히 눈을 치워나갔다.
힘이 점점 빠지는지 밖으로 향하는 길이 자꾸 좁아져 갔다. 길 하나 내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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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찻길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다. 눈 속 통로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더이상 불가항력이었다.
찻길을 다져 놓은 것처럼 기계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얼마나 힘들게 삽질을 했는지 허기가 졌다. 전기가 없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가스토브를 사용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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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이었다. 물을 끓여 컵라면에 물을 넣고 잠시 뒤 후후 불어 가면서 허기를 달랬다.
뜨거운 라면 국물에 온 몸에 온기가 전해지고 속이 꽉 채워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은 물로 달달한 커피를 만들어 눈으로 바뀐 풍경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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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은 눈을 어찌할까 싶었다.
막상 방으로 들어오니 무엇을 먼저해야 할지 몰랐다. 왜냐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햇살은 아직 남쪽 창으로 다 들어오지 못해 밝지도 어둡지 않게 방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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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다 빠져 나갔는지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불 속은 따뜻했지만 오래 있지 못했다.
행여나 잠이 들어 버리면 어쩔까 싶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밤이 되면 정말 암울할 것 같았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긴긴 밤을 의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갈 수록 집안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는 만큼 몸에 걸치는 옷가지는 늘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옆방 가족들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차 주변 눈을 치우기 시작하자
나도 힘을 거들고 싶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신발을 다시 신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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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치우기 전에 아직 아무도 밝지 않는 곳에 발을 디뎌 보았다. 무릎이상으로 다리가 눈속으로 빠졌다.
뒤로 그대로 넘어져도 눈의 자연 매트가 되어 아프지도 않았다.
열심히 눈을 치우는데 삽이 부러졌다. 이제 더 이상 눈도 치우지 못했다. 아직 앞 마당은 눈 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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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저기 큰 길에 전기가 들어와서 열린 식당이 있었다.
옆방네 사람들이랑 뜻하지 않게 설날 저녁을 근사하게 감사하게 먹을 수 있었다.
식당을 주변으로 불이 켜진 창문을 보고 희망을 가졌지만 동네 안 쪽은 아직 깜깜했다.

어두워지자 눈 치우는 사람들도 차 들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 속으로 마치 전기 없는 시절로 돌아 간듯했다.
마지막 남은 휴대폰 불 빛을 의지해 집안으로 들어섰다.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다.

촛불로 다행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는 벗어 날 수 있었지만 낮은 온도는 어쩌지 못했다.
춥고 길고 긴 밤을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연락이 되는 친구에게 상황을 물었지만,
상황이 어떻게 좋아 질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통화를 하며 옷을 또 걸쳐 입는데 한 줄기 희망처럼 찬란히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큰 소리를 질렀고 순간 이제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추운 밤이 걱정되었는데,
전기가 들어오고 인터넷을 통해서 다시 세상과 연결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전기는 24시간도 채 못되어 다시 들어왔는데 전기가 없던 그 짧은 순간이 이상했다.
세상과 단절이 된 듯 답답함, 막상 할 수 있는 것 들이 많이 없어진 허전함, 검은 정적에서 다가오는 긴장감
전기 한번 들어오지 않았는데 잃어버리고 멈추어 버린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블랙 아웃이라는 영화 속 상상이 현실화 된다는 뉴스가 더 이상 허접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삶에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전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2013/02/11 06:46 2013/02/11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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