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결심한 그대로 일하러 가지 않았다.
3일 정도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긴장을 너무 풀었는지 아침 늦게 자버렸다. 9시가 되어서 눈을 떴다.

앗 내차 어떻게 하지, 지난 밤에 자리가 없어 흰 라인에 주자를 했는데,
부랴부랴 뛰어갔지만 벌써 노란 봉투가 보였다. 40불짜리이다.
흰색에는 천하무적 장애인 주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기분 좋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에는 변함없이 테니스도 쳤다. 이제 여기서 테니스 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밤 11시가 헐 넘어서 집에 왔다. 빈집이나 다름이 없다. 나 혼자만 남아 있으니 말이다.

화요일 일찍 서 둘렸다. 샌디 에이고에서 처리할 일이 많았다.
우선 DMV에 가서 주소 바꾸고 장애인 주차 카드 새로 받았다.
이거 하나 있으면 주차하기는 문제 없다. 가끔씩 눈치 보이기도 하지만.

경아 누나와 월남 국수 먹고 나는 다운 타운으로 향했다.
씨티 칼리지에 주차하고 걸었다.
만날 사람이 너무 많았다. Transit center에 가서 장애인 승차 카드도 새로 받아야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턴을 했던 시니어 센터에도 가서 인사하고 학교에 가서 빌 교수님도 뵜다.
걸어보기로 작정했다. 지금부터 길들여야 보스톤 가서 편할 것 같았다.
근데 계속 웃음이 나왔다. 어디 가던 예전 기억이 떠오르고 그 가게에서 생긴 일화가 떠 올랐기 때문이다.

기억이 많은 샌디 에이고 다운 타운이다. 도서관에 들려 새로 나온 한국책이 있는지 보았다.
김용택 시인의 정님이라는 책이 보였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빌렸다.
영어 책만 읽어도 모자랄 판에 한국책이라니. 가끔은 한국책이 생각난다. 그냥 술술 읽을 수 있는 한국책.

걸어다니면서 책 읽었다. 너무 재미 있었다. 나도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른 봄에 물이 차오른 소나무 새순도 먹었고. 진달래가 핀 산에 올라 꽃잎도 별미 삼아 먹었다.
여름에 수영하다가 고기 잡다가 깨진 병에 발이라도 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쑥 잎 찢여 상처에 동여 매고

소 준다고 풀 비다가 낫에 손도 비이고 정말 사람들 중에 작두에 손가락 잘린 이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너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완전 시골 촌놈임을 어길 수 없었다.
가슴 따뜻이 기억의 저 편으로 나를 이어 준 책 한권 이었다.

수요일.
일찍 학교로 갔다. 마리오 교수님이 오전에 나오신다고 했다. 지도 교수님이기에 반드시 찾아뵈어야 했다.
과 사무실에 가서 교수님이랑 얘기를 했다. 가기전에 한 번 더 오겠다고 하고 학교를 나왔다.
슬리퍼를 바꾸기로 했다. 칼스베드까지 가서 새 신을 샀다.

집에 와서 할일을 만들었다. 아파트 정리하기로 했다. 도네이션 할 물건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마음에 팔릴까 생각을 하며 집앞에 전을 폈다. 1불짜리 바구니 하나 팔았다.
이런 거 팔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 전에 살던 동네로 갔다.

이제는 우리 집이 없고 마당이 없으니 전을 펴기가 힘이 들었다.
다시 싸 매고는 결국 생각대로 thrift shop에 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수익금은 다운 타운 시니어 센터로 간다.

인턴을 했던 곳인데 하루에 200명 정도의 노인 분들께 식사를 제공하는데 수익금이 많이 쓰여진다.
요시도 원하던 바이다. 3일 동안 분주하게 움직였다.

2007/06/28 09:39 2007/06/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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