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에 누나에게 전화가 자주 왔다.
샌디 에이고에 계시는 시아버지께서 조금 아프신것 같다고 했다.
누나의 시아버지, 매형의 아버지를 나는 Papa라 부르며 따랐다. 미국에 계시는 또 다른 아버지인 것이다.

샌디에 처음 정착을 하며 누나네 시댁 식구랑 많은 시간을 가졌다.
Papa와 Mama는 사돈 어른으로 참 어려운 관계이다. 한국이었다면 항상 어려웠을 관계였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돈이라도 그냥을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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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렇게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파라 마마라 불렸다.
마마는 내가 이렇게 부른다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사람들인데도 내가 마마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파파라 마마라 부르는 것이 좋았다.

파파가 아프다고 했다. 급기야 목요일 저녁에는 비보를 들었다. 병원에서 위암 말기인데 1주일 정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일주일까지 올 정도이면 그 고통이 너무 많았을 것인데 그냥 넘겨버린 파파가 조금 미웠다.
하지만 파파라면 충분히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아침, 누나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만약에 장례식에 올 수 있냐고, 간다고 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그럼 차라리 미리와서 먼저 인사를 드려라고 했다.
아무래도 이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금요일 오전내내 급히 샌디행 비행기를 찾았다.

운이 좋았는지 파파의 힘인지 거의 기적으로 싼 비행기를 찾았다. 토요일 오후에 바로 갈 수 있었다.
갑자기 금요일 오후부터 바빠졌다. 이것 저것 준비를 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탔다.
디트로이트에서 갈아타며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파파는 이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저녁 9시30분에 도착을 했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거리
마당에서부터 집안까지 문안을 사람들로 북쩍거렸다. 하이메가 나를 반겼다.
마마를 꼭 껴안고는 파파를 보려 갔다. 몸의 반 정도는 마비가 왔다고 했다.

침대에 누운 파파는 연신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나를 보지는 못했지만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짧은 스페인어로 많은 말 수 없었다. 솔직히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가족들 하나 하나와 인사를 했다. 슬픔이 묻어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마운 사람을 잊는 것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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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다해가는 파파를 보고 있노나니 끊임없는 눈물이 흘렀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일이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 복받쳐 오르는 슬픔은 흐르는 눈물이었다. 거친 숨소리의 파파의 몸에는 아직 온기가 돌았다.

파파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고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파파를 떠올려 보았지만, 머릿 속에는 수업 시간에 배운 알량한 지식만 떠 올랐다.
내가 노인학을 공부하기에 지나칠 수 없는 수 많은 내용들이 떠올랐다.

일요일 이른 새벽 파파는 마지막 눈을 뜨고 가족들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했다.
정말 생의 마지막은 그렇게 힘들고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힘겹게 뜨인 짧은 눈 인사.

이제 일요일 오전부터 정신없이 바빠졌다. 장례를 위해 장소를 찾고 친지들에게 알리고,
다행히 가족들이 많아서 일을 분담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여지없이 수업 중의 수 많은 지식들이
지나갔다. 다들 빨리 움직여 수요일에 장례를 하고 목요일에 미사까지 잡았다.

수요일 장례식
엄숙한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 자유스러운 분위기 였다. viewing을 하며 멕시코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파파의 전기를 읽고 기도문을 읽고 가족들이 남은 인사를 했다.

슬퍼하지만 않고 이렇게 가족들 한명 한명이 소중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없어 아쉬웠다.
나도 할말이 있었고 준비를 해 두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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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미사가 끝나고 손님을 맞았다. 마당 옆에 조용히 파파를 위한 공간을 남겨 두었다.
파파를 기억할 수 있게끔 사진을 두고 쇼파를 두어 모두가 잠깐이라도 편하게 파파를 떠 올릴 수 있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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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용히 파파의 사진을 들을 보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빛 바랜 사진들 뿐아니라,
지난날의 샌디에서의 가족 소풍에서 찍은 사진들 사진을 바라보니 그 날이 기억났다.
파파의 웃음과 말소리 하나하나가 들렸다.

지난 봄에 아름다운 날을 장식하였던 50주년 결혼식 사진,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
파파를 처음 만났던 한국에서의 추억, 파파랑 마마는 한번 더 한국을 가고 싶어했다.
이번에는 나도 누나네도 다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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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한국의 방문에서 제대로 못한 대접을 이번에 잘 할 수 있을것 같았는데,
어설프지만 스페인어 한번 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러지 못해 슬프다.

사진들 속에 집안 곳곳에 파파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파파는 집에서 가까운 sea port village 바다 근처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바다가 그리운 것일까. 포근한 집을 못잊고 싶은 것일까.

파파는 내 젊은 날의 미국 생활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주었다.
언제나 나를 반겹고 문화적 차이 속에서 항상 먼저 이해해 주셨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울 것이라며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셨다.

파파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Tu eres Papa de Mexicana.  Papa, yo te quierro."
2010/07/05 14:34 2010/07/0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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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마지막 2010/07/11 22:29  address  modify  write

    "재만, Yo te quiero!" 라고 파파도 대답 하셨을 꺼예요.. 하늘 나라에서 재만씨 마지막 하고 인사들으시면서...

    • Gerontology 2010/08/01 00:18  address  midify

      네 파파도 그러실거예요...

  2. 이혜영 2010/07/21 21:08  address  modify  write

    삼촌큰일에참석하느라 애썼네요 그곳식구들 슬픔이많이컸으리라생각이 듭니다 나는 남양주사람이오 한솔이와 대전에서 먹걸이도변변찮은 집에서며칠버텼는데 내일은세식구청송갑니다 대전청소도끝났으니 겨울방학에나올지.다음주는형이 서울에서 일주일교육있습니다 미국고모는 소식이 뜸합니다 안부전해주세요

    • Gerontology 2010/08/01 00:20  address  midify

      우와 우리 형수 처음으로 글을 남기셨내...샌디에 잘 다녀왔어요...
      큰 일도 잘치렀어요...형수는 청송에 잘 다녀왔는지 궁금하네요...
      더운 여름날 건강하세요...